우체국이야기
런던우체국의 소소하고 재미난 에피소드를 들려드립니다.
당신도 내 마음처럼
18/06/20 19:16:05 런던우체국 0 조회 1985
이번에 미얀마에 소포를 보내면서 미얀마의 영어 표시가 ‘Myamar’ 인걸 처음 알았다.
받는 사람은 우리 아빠.
내 나이 마흔이 되어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아빠라 부르는 우리의 부자 관계가 나는 마음에 든다.
 
그가 작년에 미얀마로 간다고 했을 때 우리 가족은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일흔이 다 되어 가는 나이에,
오지 현장에서 작업 하다는 것은 걱정이 되는 일 일수 밖에 없다.
어느 누구는 그 나이까지 일 할 수 있는 것도 대단하다고 했지만
그건 그의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다.
난 그의 경제 활동의 유효성에 대해 인정하지만
아직 현실 속에 있어야 하는 이유에 마음이 애잔하다.  
 
미얀마에서 석유가 나는지, 금광이 나오는지는 모르지만
전화도 안 된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은 지난 6개월 동안 전화 연결 한번 해 봤다고 한다.
내가 메일을 보낸 지, 3개월 후에 그에게서 ‘안부’라는 제목으로 답장이 왔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의 메일 일전에 보았다. 여기는 인터넷, 전화가 잘 안 된다.
이제 인공위성 인터넷이 개통되어 매일 볼 수 있단다.
전화는 여전히 걸기 어렵고 오는 전화는 받을 수 있단다.
지금은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되어 바쁘단다.
날씨는 낮에는 덥고, 밤에는 시원하다, 앞으로 점점 더워질 것이고 3월부터 5월까지는 40도정도 이란다.
나는 건강하고 일하는데 열심이며, 같이 있는 모든 이와 원만하게 잘 지낸단다. 모두가 영어를 할 줄 몰라 내가 앞장서다 보니 약간의 어려움은 있다. 그러나 보람은 있다.
그래 연말에 엄마 보고 갔느냐? 하는 일은?
아이들의 모습도 보고 싶구나? 그리고 너희의 모든 것....
그래 헬기 들어올 시간이라 이만 줄인다.
아부지
 
 
그가 생활하는 공간이 상상이 되는 메일 이었다.
난 그에게 빠른 시간 안에 건강하게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내용이었다.
그럴 거라면 그는 처음부터 그 곳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2주전에 ‘부탁’이라는 제목으로 메일이 왔다
 
동안 잘 지냈느냐?
아부지는 너희들 염려 덕에 건강하게 잘 있다.
아부지 Working Shoes Clark size 7 1/2 사서 아래주소로 보내라.
보낼곳 #29A, Mya Thida housing, 00 zanar street, south Okkarlarpa township, Yangon Myanmar이며
받는사람 Park Kyung Tae tel 959 49660541(cell phone), house phone 01 8500227.
아부지는 먼 곳에 있어 받기 어렵다. 상기인은 진주아빠이며, 아부지 있는 곳에 회사 항공기가 매일 운항한단다.
받고 다음날이면 내가 받을 수 있다.
참 수지 현지 잘 있느냐? 할아버지한테 메일 보내라 해라, 오랜만이라 보고 싶구나.
아부지
 
 
도대체 그는 어떤 곳에 있는 건지, 생각 할수록 마음이 답답해 진다.
그리고 메일 제목이 ‘부탁’ 이라니. 치사하게 신발 한 컬레 보내라고 하면서
‘부탁’ 이라는 말로 나를 죄스럽게 만든다. 
그는 아직도 자존심이 강하고 이기적이다.
 
일단, 그가 선호하는 브라운 색깔로 군화처럼 튼튼하게 생긴 신발을 주문했다.
이틀 후에 사무실로 신발이 배달되자 마음이 조급해 진다.
보내고 싶은 것은 많지만 미얀마도 세관이 있을 텐데
너무 많이 보내서 한국처럼 주민번호가 필요하고 통관비 나오면
연락도 잘 않되는 곳에서 큰일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내 마음은 조급해 진다.
 
점심시간에 Tesco에 가서 두피로 고생하는 그가 사용하는 Neutrogena 삼푸를 2개.
커피를 좋아하는 그를 위해 바로 따라 마실 수 있는 Rombouts 커피 1통.
이 정도면 무리 없이 미얀마 세관을 통과 할거라 확신한다.
 
동남아 전문 배송 업체 창고에 배달 해주고 그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며칠 뒤면 그의 잘 받았다는 메일을 상상했다. 벌써 마음이 설렌다.
 
그런데 물건 보낸 지 이틀 후에 배송업체에서 전화가 온다.
인보이스 있어야 된다고. 이런 !! 메일로 바로 보내 주었다.
불안한 마음에 그 다음날 배송업체에 확인을 해보니 인보이스 못 받았다고 한다.
다시 보냈다. 예상 배송 날짜가 훨씬 지났다.
그리고 며칠 후 배송 확인을 해보니 방콕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그에게 메일이 왔다.
 
동안 잘 있었느냐?
아직도 아무 연락이 없다. 연락해 보아라. 그리고 연락해라.
공연히 신경쓰게해 미안하구나. 연락처를 알려주면 연락해 보겠다.
반송 가능하다면 반송하는 것이 옳을 것 같구나.
이제 서서히 더워지기 시작하는구나. 그러나 밤에는 바닷바람이 불어 시원하단다.
그럼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거라.
아부지
 
 
그에게 작은 기쁨을 주고 싶었는데, 오히려 걱정거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틀 후에 메일이 다시 왔다.  
 
오늘 오후에 사무실에서 보낸 것 잘 받았다고 연락이 왔다.
내일 오전에 받아볼 수 있겠구나. 걱정하게 해서 미안하구나.
이곳은 무엇이든 조잡하여 그렇단다. 이해하여라.
아부지도 열심히 살고 있다.
아부지
 
 
그리고 그 다음날,
 
오늘 오전에 어렵게 보내준 구두와 커피 그리고 삼푸 잘 받았다.
구두 너무 좋구나, 잘 맞는구나. 꼭 맞춤 같구나.
모두들 부러워한단다. 아들이 정성껏 보낸 것이라서,....
걱정 많이 끼쳤구나. 그럼 모두 건강하게 잘 있기를 기대한다.
아부지
 
 
난 안다.
 
우리가 한국으로 보내는 당신의 마음도 내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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